|
징키스칸은 후계자로 첫째아들이 아닌 셋째 “우구데이”를 택했습니다, 우구데이가 도량이 가장 넓다 ‘는 이유였습니다,우구데이는 현명하고 판단력이 뛰어나며 너그러웠지만 술을 좋아했습니다,
징키스칸은 술을 좋아하는 그를 꾸짖기도 했지만, 몽골제국이 가진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지도자감으로 우구데이의 느긋한 성격이 후한 점수를 줬다는 이야기입니다,
우구데이에 대한 일화는 많습니다,
그중 하나만 소개하면 몽골의 관습법에 따르면 흐르는 물에 몸을 씻으면 안 되었습니다,
징기스칸도 이를 엄격히 금했습니다,
그런데 우구데이가 형 차가타이와 함께 사냥하고 돌아오는데 누군가 물가에서 몸을 씻고 있었습니다,
차가타이는 금률에 엄격했기 때문에 부하들을 시켜 그를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우구데이가 말했습니다,
형님, 오늘은 너무 늦었고 우리도 피곤하니 오늘 밤에는 그를 구금 했다가 내일 심문해서 처형합시다, 차가타이는 그렇게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런 뒤 우구데이는 몰래 은화 한 잎을 물에 빠뜨리고는 그 사람에게 일러주었습니다,
“심문할 때 저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재산이 물에 빠져 그것을 건지려고 물에 들어갔습니다, ‘ 라고 말하라 과연 심문받을 때 그는 그렇게 말했고 우구데이는 이렇게 그를 변호 했습니다,
금률을 어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불쌍한 사람은 극도의 절망과 곤경에 빠져 이 보잘것없는 것 때문에 자신을 희생한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를 용서해주고 또 그에게 물에 빠트린 것의 열 배에 달하는 은을 주어 돌려보냈습니다,
그 후 우구데이가 전장에 나서 적들과 싸울 때 기습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 한 병사가 우구데이의 몸을 향해 날아드는 독이 묻은 화살을 대신 맞아 우구데이의 목숨을 살려냈는데 이 병사는 금률을 어겨 사형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우구데이가 관용을 베풀어 돌려보낸 그 병사였다는 것 사관은 우구데이를 평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세상의 자유인들은 그의 품성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의 관대한 심성은 풍부한 재물보다 더 나았기 때문입니다,
우구데이의 이런 품성은 징키스칸에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또 우구데이가 아버지의 총신 야율초재를 끝까지 중용하여 정주민들을 다스리는 전통적인 도덕률을 받아들인 것도 보통의 군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뛰어난 사람이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용납하는 것이 아닐까? 참으로 뛰어난 인재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처한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 아닐까?
징키스칸이 술꾼 우구데이를 후계자로 삼은 것은 몽골제국의 조직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사관들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호남 땅에 한 원이 있어 정사가 사납고 형벌이 혹독하므로, 아랫사람들이 견디어 내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수리(首吏)가 관속들을 불러 의논하였습니다.
“자 이대로 있다간 맞아 죽고 말테고, 내뺐다간 법에 죽고 말 형편이니 어차피 이렇게 되고 말 바에는 저놈을 쫓아낼 도리밖에 없을 것 같애!” “그렇지만 우리 같은 약한 힘으로 어떻게 하겠소?”
“걱정하지 말고 이렇게 이렇게만 하시오”
다음 날 아침, 원이 조회를 마치고 나서 혼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작은 통인(通引) 한 사람이 불문곡직하고 원을 뺨을 후려갈겼습니다. 그래 놓으니, 원이 가만히 있을 것인가. 원은 분기충천하여 책상을 박차고 나오면서 통인을 잡아내라고 호통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모두가 짜고 하는 일이라, 모든 통인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면서, “어찌 통인이 사또를 칠 수 있을까?”하고 아무도 곧이들으려 하지 않고 책실(冊室)에 들어가서 아뢰었습니다.
“도령님!, 사또께서 별안간 병환이 나신 모양 같습니다.”
다른 관원과 원의 아들들이 급히 나와 보니, 과연 눈이 벌겋게 열이 오른 원은 통인이 뺨치던 얘기를 하면서 손으로 영창도 치고 발로 책상도 차고 했습니다. 또 그 말이 선후가 없고, 온몸에 땀까지 흐르고 있으므로 아들들도 미친 것으로 알아, 의원을 부르고 야단이 났으나, “이놈, 내가 무슨 병이 있어 의원을 불러왔느냐?”고 아들까지 바로 차므로, 먼데서 삼사(監司)가 소문을 듣고는, 마침내 파직시키고 말았습니다. 얼마 뒤 하는 수 없이 서울 본집으로 돌아가는데 감사가 보고서 말을 했습니다.
“들으니 신환이 있다더니 지금은 좀 어떤고?” 그가 대답합니다.
“사실은 병이 아니라…” 하고 말을 꺼내는데 감사가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만두게! 또 그 증세가 나는 모양이로세”하고 가버렸습니다.
수십 년 후, 생각할수록 그때 일이 원통해서 마지막으로 자녀들을 불러 놓고서는 “얘들아! 아무 해의 그 일을 너희들은 지금도 참말이라고 믿느냐?” 하니, 아들들이 울상으로 지으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 병환이 오래도록 잠잠하시더니 또 증세가 보이니 이 일을 어떡하면 좋습니까?”
원은 평생 그 말을 못 해보고 죽었습니다.
국민환경방송 kmetv8114@naver.com
2026.10.23(금) 1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