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화 단식 순도 기록 '창동일기' 국역·원문·영인 첫 소개

병산영당, '의당 박세화의 학문세계' 학술총서 발간

노병철 기자 kmetv8114@naver.co.kr
2020년 11월 04일(수) 16:43
'창동일기'(왼쪽)와 학술총서 '의당 박세화의 학문세계'
[국민환경방송]
충북 제천에서 문인을 양성하고 항일 의병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1834~1910) 선생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울분에 단식 순도(殉道·정의나 도의를 위해 목숨을 바침)한 기록인 '창동일기(昌東日記)' 원문과 영인, 국역을 함께 소개한 책자가 나왔다.

(사)병산영당(도유사 안광영)은 '의당 박세화의 학문세계(의당 박세화 학술총서 3)'를 펴냈다고 4일 밝혔다.

이 가운데 시선을 끄는 것이 '창동일기'다.

정경훈 원광대 교수는 '창동일기' 해제에서 "2014년에 출간된 다른 국역서의 일부 번역 오류를 이번 번역본에 바로 잡았고, 원문과 일기 전체를 영인해 최초로 소개했다"고 밝혔다.

이 '창동일기'는 의당학파 문인인 죽하(竹下) 정동휘(鄭東暉·1938~2012) 집안이 보유하고 있다.

'창동일기'는 1910년 음력(이하 같음) 7월27일(양력 8월31일)부터 박세화 선생이 단식 끝에 순도한 8월28일(10월1일)까지 32일간의 기록이다.

선생은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는 "아, 슬프구나! 내가 장차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했다.

선생은 가족의 만류에도 8월6일부터 모든 곡기를 끊는 절립(絶粒)에 들어가 23일째 되는 8월28일 죽음을 맞이했다.

이날의 일기에는 '전날 밤에 지진이 일어나고, 큰 안개가 가로질러 걸쳐 있었다. 곡기를 끊은 지 23일 만에 임종했다. 몸은 수척하고 파리해졌으며 탈구된 상태였다. 입은 건조하고 혀는 메말라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적었다.

단식 중에도 50여 명의 문인과 방문객에게 강론했고, 죽음을 말리는 장남을 훈계하며 순도의 길을 놓지 않았다.

선생은 월악산 용하동에서 용하영당(현 병산영당)을 창건하고, 1905년 춘추대의 정신으로 의병을 일으켜 제자들과 함께 한성사령부에 연행돼 8개월간 고초를 겪었다.

이번 학술총서는 모두 11편의 논문을 엮었다.

1부(의당학파의 철학사상)에는 ▲의당 박세화 선생의 유학사상(성신여대 김용재) ▲의당 박세화에 있어서 율곡 성리학의 수용과 계승(충남대 이영자) ▲회당 윤응선의 학문과 정신(한국전통문화대 최영성)을 실었다.

2부(의당학파의 문학)는 ▲박세화의 화양강회와 '화양강회일기'에 대한 고찰(중원대 이상주) ▲의당 박세화에게 있어서 구인의 문학적 실천(강원대 안세현) ▲회당 윤응선의 '독이제십변'가 '이제후변' 일고(원광대 이군선) ▲의당 박세화의 한시에 대한 일면모(원광대 정경훈), 3부(제천지역의 위정척사와 거의)는 ▲의당 박세화의 이거와 거의 활동(정경훈) ▲직당 신현국의 위정척사론의 특징(성균관대 김영주) ▲제천의 의병장 이강년의 위정척사 의식과 문학에 대한 연구(경북대 강민구)다.

양승운 병산영당 학술위원장은 "창동일기는 의당 선생의 순도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 소중한 자료다. 이번 소중한 연구 성과를 널리 알리고자 전국 대학 등에 배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병철 기자 kmetv8114@nav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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